🕷️ 해미라는 아이
<버닝>의 해미는 묘한 아이다.
한국 영화에서 전무했던 여성 원형의 돌발적 탄생이다.
이는 전종서라는 육체를 얻자마자 단박에 날개를 얻고 스타로 떠올랐다.
마치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세룰리아 블루를 개발하자 여러 디자이너들이 이 색을 주요 테마로 사용하고
그것이 점점 저가 브랜드와 백화점으로 퍼지고, 결국 할인매장의 스웨터에까지 쓰이는 것처럼.
거장이 ‘해미’라는 인물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해하며 대중적으로 재해석하고 SNL이나 시시껄렁한 로맨틱 코미디, 호러영화 따위로 그 느낌을 되풀이하고 이윽고 브랜드화했다.
이는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해미라는 아이 자체가 묘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존재이니 말이다.
해미는 거미처럼 자신의 서사와 몸,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덫을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아이이다.
그 덫은 선하지 않지만 순수하다.
그녀 몸 중앙에는 그녀를 먹어들어가는 외로움과 허기 따위가 자리잡고 있고, 그것이 곤충다리같이 섬세하고 떨리는 손을 내밀어 본능적으로 거미줄을 자아낸다.
🇰🇷 한국이라는 장소
상업영화가 우리를 가상의 공간으로 데려간다면 이창동은 한국,
그것도 진짜 사람들이 피와 땀을 눈물처럼 흘리고 삶을 일구어가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진짜 한국으로 데려간다.
<버닝>이 상업영화라면 종수가 아무리 일용직을 전전하며 소설을 쓴다고 뾰족한 미래 계획도 없이사는 남자라도, 그의 초등학교 동창은 첼로 따위를 연주하는 공주님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두 사람 중 한명은 물류 배달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상가 앞에서 배꼽을 드러내고 춤을 추며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일을 하고 있다.
관객인 우리가, 해미의 가난을 눈치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녀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그녀가 어떤 계층에서 왔는지 보여준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인천, 밀양, 안성, 대구, 부산 등지의 한국 도시 가시내들의 모습이다.
이창동은 이 현실의 공간을 뚫고 안개같은 한국 사람의 마음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